알타이저는 그의 '무신론의 복음'을 통하여 분명하게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창조적 부정을 통해 생명적 긍정을 찾을 수 있는 '오늘에 사는 신학'을 제창하였다.
반 뷰랜은 '신의 죽음'을 알타이저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취급하지 아니하고 언어 분석학적으로 다루어 신 개념의 무의미성을 주장한다. 예수가 누렸던 이 '자유성' 때문에 그의 삶은 복음적 특성을 갖는다. 예수를 역사적으로 아는 것은 무익하며, 오직 이 자유성의 빛을 통하여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. 예수의 부활도 이 '자유'가 제자들의 마음 속에 반영되어질 때 그것이 예수의 재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. 이같이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한 곳에 복음은 있을 수 없다. 사신신학이 낳은 사동아는 1) 하나님 신앙을 떠난 기독교 2) 종교적 체험 없는 기독교 3) 개인의 회개 없는 기독교 4) 성경 없는 기독교이다.
볼트만의 비신화화나 반 뷰랜의 세속화 프로그램 속에 비종교적 해석을 통하여 세속의 지성인들에게 기독교를 이해시켜 보려는 그 선교적 동기가 깃들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. 그러나, 오늘의 새신학은 인간을 위하여 복음의 개조를 시도한다. 복음은 주어진 것이요, 우리가 만들 성격이 아니다. 바로 이점에서 신 자유주의의 치명적인 결함이 나타나고 있다. 기